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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여자의 기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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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펀치티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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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오피스텔은 화장실 방음이 너무 형편없었다.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옆집인지 모르지만, 화장실에서는 물내리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심지어 볼일볼때 힘주는 신음소리까지 들렸다.



하루는 늦게까지 술을 먹고 귀가한 어느 날.



만취한 상태로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왠 여자의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전화하나보다 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던 찰나, 남자의 대답소리와 서로 웃고 떠드는 소리까지 들렸고,



서로 씻겨주며 수위 높은 대화가 오가는 것을 끝으로 이사를 마음먹게 되었다.



때마침, 계약기간도 끝났거니와 근처에 비슷한 조건에 더 저렴한 집이 있어 이사하기에 최적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새로 이사온 집도 전과 비슷한 오피스텔이다.


다만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층간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제일 꼭대기층에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집이었으며,


유일하게 붙어있는 왼쪽의 집도 사실상 사무실로 등록된 주소지라서 실 거주자가 없다는 것도 이 집으로 결정하는데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통유리로 된 창에서 비추는 햇빛의 따스함으로 아침에 기분좋은 기상을 할 수 있었고, 창밖 아래로 보이는 분주한 도시의 야경은 소주보단 위스키가 어울리는 품격있는 나이트 뷰를 선사하였다.


보증금과 월세도 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수준이라 모든 조건이 완벽한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왠 낯선 여자의 기침소리가 들리기 전 까지는.







이러한 복합다주택 건물의 화장실은 배수라인과 환풍라인이 연결되어 있어 방음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소리는 잘 안들릴지 몰라도, 기침이나 변기 물 내리는 것과 같은 큰 소리는(특히 밤늦게나 새벽과 같은 고요한 시간대에)


이웃집끼리 공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것은 기침소리가 들려서 그런게 아니라,


너무 자주 들렸기 때문이다.









약속 없는 주말, 새로운 게임이 출시된 기념으로 일요일 하루를 나른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었었다.


모든 음식과 물은 이미 배달시켜놓거나 냉장고에 쟁여두었고, 심심할때마다 먹을 간식도 충분히 준비하였다.


아침부터 햄버거와 밀크쉐이크로 산뜻하게 시작하였는데, 둘중 하나에서 뭔가 탈이 난게 분명했다.


누구보다 편하고 게으르게 보내려던 주말 하루가 배탈과 설사로 얼룩지게 된 것이다.





게임은 커녕, 30분에 한번꼴로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오늘 먹은것은 물론이고 전날에 먹은 것, 음식과 액체 모두 다 아래로 쏟아내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근처 병원도 휴무일이었고, 그 흔한 배탈약하나 집에 없었다.


그냥, 계속 비워내리면 괜찮아 질거고 괜찮아지면 아래 편의점에라도 가서 훼스탈이나 하나 사먹을까 했다.


그 날, 화장실에서 왠 여자의 기침소리가 계속 들렸다.





10시간을 화장실에 들락거렸는데, 그 중 네 다섯번은 화장실에서 여자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 하는 기침이 아닌 목에 뭔가 막혀 켁켁대는 기침소리가 말이다.


처음은 예사로 생각했다. 감기에 걸렸나 보다 하고.


두번째에는 생각했다. 양치를 깊게 자주 하나 보다 하고.


세번째, 네번째 부터는 궁금했다. 뭐하는 사람인가 하고.






몸이 아파 집에 누워 기침을 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건 반드시 화장실에서 내는 소리여야만 다른 화자실에서 들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도 나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화장실에서 몇시간이고 기침하며 머무를 순 없다.


게다가 내가 화장실에 있을 때 들은 소리만해도 이정도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자주 화장실에서 켁켁댔던 것일까.


그 날은 이정도로 끝났다.





며칠이 지났다.


가끔씩 화장실에 갈때마다 한번씩은 꼭 그 여자의 켁켁대는 기침소리가 들린다.


의식하지 않고 잊고 지내다가도, 한번씩 볼일보다가 그 기침소리가 들리면 다시 궁금해지곤 했다.


그 여자는 왜 자꾸 화장실에서 기침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몇개월이 지난 지금.


난 그 이유를 얼마전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 여자를 만난 것도, 직접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다.


다만,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쪽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러하듯, 우리 건물도 실내에선 애완동물의 사육이나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일부 사람은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곤 하나보다.


그래서 건물 관리인은 엘리베이터 내부에 실내에서 제발 담배피지마세요! 라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그 문구 하단에, 누군가가 정갈한 글씨로 포스트잇에 글을 써서 붙여놓은 것이다.


"507호 화장실에서 제발 담배피지마!"





내 방은 707호.


그 여자가 아랫집 사람이고, 그 아랫집의 아랫집이 507호. 그 집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이 모든 이유가 납득이 된다.


담배냄새로 고통받는 그 여자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마다 나는 담배 냄새와 연기때문에 켁켁거린 것이었고, 이를 모르는 나는 화장실에 갈때마다 기침소리를 들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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